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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직장인 독서]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 김영건 에세이 | 에세이 추천

더운 날씨를 피해 다녀온 도서관에서 표지 뒷면에 적힌 문구에 읽고 싶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프롤로그를 읽고 바로 집으로 데려온 #우리는책의파도에몸을맡긴채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님의 에세이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하루를 볼 수 있었다. 평소 문장을 여러 번 해석하여 이해하는 것보단, 같은 말을 여러 번 보며 달라진 내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직관적인 책을 좋아한다. 내 기준으로 추상적이었던 제목과 달리 직관적인 내용이 대조되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인지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나와 같은 독서 취향을 가졌고, 가볍게 읽어나가기 좋은 책을 찾는 사람에게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적막한 밤의 서점에 홀로 앉아 책으로 닻을 내리고 문장의 불빛을 따라 더듬어간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영혼이 지닌 고유한 무늬를 발견하게 된다. 닮고 싶고 닿고 싶는 모양을 한, 책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더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깨알 책갈피와 함께
*젊어지고 싶은 27세 할미

p.8
저는 오늘도 서가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며 책을 꽂습니다.책의 파도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른 채로, 언젠가 저처럼 놀랄 당신을 상상하면서요.

p.24
그렇다. 나는 정말로 ‘불편하게 ‘라고 말했다. 그 단어가 본래의 의미 이상의, 뒤따라올 조치를 요구하는 일종의 강압적인 언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는 그 뜻을 알고 그렇게 말했다. 돌아온 어머니의 대답은 내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서점이 뭔데요.” 나는 정전이 일어난 것처럼 어리둥절해져 그만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속으로 같은 문장을 곱씹을 뿐이다. 글쎄, 서점이란 정말 무엇일까.

p.59
정원가는 장미 향기를 음미 사람이 아니라 ‘흙에 석회를 더 넣어야 할지’, 아니면 흙이 너무 묵직하여 ‘모래를 조금 더 섞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 활짝 핀 장미는 아마추어 애호가들을 위한 것. 정원가의 즐거움은 보다 깊숙한 곳, 바로 땅의 자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p60, <가드닝 기술>


인간은 미세한 물리적인 자국과 흔적들 속에서, 놀랍게도 타인의 행동과 마음속 자취와 요동을 감지해 낸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라도 마주할 때면, 같은 자국에서도 언어 너머 마음과 감정의 흔적을 더 필사적으로 해독하려 든다. 글씨를 써 내려간 이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특정 순간의 머뭇거림이나 흔들림을 느끼고 그 마음을 읽는다.  p279, <글자풍경>
 
p.84
세월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쌓이지 않는다는 것. 세월을 품은 좋은 집이란, 매일매일 그 집을 정성껏 손질하고 보살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p.107
시간여행이란 후회가 자아낸 망상일까, 제아무리 첨단 기술과 복잡한 물리법칙으로 무장한 그럴싸한 시간여행 이야기도, 주체가 인간이든 슈퍼히어로든 상관없이, 그 살점을 발라내고 보면 후회라는 앙상한 뼈대만이 남는 듯하다. 그때 내 아이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때 그이에게 이 말을 전했더라면(혹은 반대로 그 말을 하지 않고 침묵했더라면), 그때 여섯 개의 돌을 모아 미리 악당을 처치했더라면, ··· 그것이 한 톨의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구나 잠시동안 아무도 몰래 비밀스러운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세상이기에, 선생님이 보여준 자신의 마음에 대한 올곧은 책임은 그 비극적인 끝맺음과 함께 치연한 교훈을 남겨준다.
 
p.103
소설 속 ’ 일시적인 문제‘는 망가진 전선으로 인한 정전이라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떤 감정의 균열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할 테다. 싸움의 당사자는 왜 그 다툼이 일시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할까. 지나가버릴 장대비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젖어버린 감정과 시시비비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일까 •••

p.126
'초년의 맛'은 인생의 어느 서툴렀던 시절의 맛, 성장통의 맛이다. 그 맛이란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터널을 무사히 건너감으로써 획득하는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끝이 쉬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서 미각은 사치이고 허기는 성가시기만 하다. 지금 세상은 청년들에게 초년의 맛을 기억할 권리마저 빼앗아가고 있는 건 지도 모른다. 
 
p.130
언제부턴가 잘 지내느냐는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게 되었고 좀처럼 누군가에게 묻지도 않게 되었다. 안부를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슬며시 다른 근황을 묻거나, 때로는 멋쩍은 부탁의 운을 떼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여긴 탓이다. 스스로 저 말을 입에 자주 올리지 않게 된 건, 그런 태도를 취하는 일이 그 나름대로 정직하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용건이 있다면 용건부터 말할 것, 부탁을 할 거라면 용기를 내 부탁할 것, 고백하건대 그런 믿음을 무슨 기준이라도 되는 듯 타인에게 똑같이 적용했으므로 나 역시 누군가의 안부 인사를 흘려듣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 강해졌다고 착각한 마음의 구석엔 타인의 안부에 눈과 귀를 막은 채 웅크린 내가 있다.

p.186
가끔씩 때 아닌 바람이 불어와 분수에 걸맞지 않은 욕심에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나는 가오싱젠의 말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말한다. '나는 다만 내가 되어야 한다.' 한다미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봤자 나는 나일뿐이다.'
 
p.192
수박을 고를 때 색깔과 줄무늬를 살펴보고, 손으로 툭툭 두드려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책도 그 만듦새를 가늠하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 기준을 적용해 스스로를 위한 최상의 물건을 고른다. 그렇게 공들여 책을 고르는 까닭 중 하나는 바로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내용을 알고, 저자의 주장과 생각을 알고,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와 반전을 알아도, 종이에 새겨진 그 글자만이 전해주는 감동을 오래도록 품고 싶어서 누군가는 오늘도 책을 고른다. 
 
p.211
당신은 서가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고, 마침내 신중하게 고른 책 한 권을 들고 제게 다가옵니다. 그럴 때면 제가 단순한 서점 주인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를 책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가 된 듯한 근사한 기분이 들어요. 이제 당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넬 차례입니다. "책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